백제의 재발견 – 현대미술리포트>展
전시기간 : 2015. 12. 30 ~ 2016. 2. 14 (월요일 휴관, 39일간)
전시장소 : 전북도립미술관 1~5전시실
참여작가 : 김범석, 김윤식, 김인경, 박경식, 박방영, 박인현, 박하선, 서기문,서용선, 윤남웅, 이상조, 이성원, 이승우, 이진경, 이철규, 이철량, 이희춘, 임동식, 정운학, 최재석 (총 20명)
전시작품 : 98점 관람료 : 무료
전북도립미술관(관장 장석원)에서는 <백제의 재발견 – 현대미술 리포트>展을 개최한다. 초대작가는 총 20명. 김범석, 김윤식, 김인경, 박경식, 박방영, 박인현, 박하선, 서기문, 서용선, 윤남웅, 이상조, 이성원, 이승우, 이진경, 이철규, 이철량, 이희춘, 임동식, 정운학, 최재석 미술가이다.
<백제의 재발견 – 현대미술리포트>展은 2015.7.4. 독일 본에서 열린 제39차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위원회에서 우리나라에서는 12번째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익산?공주?부여)를 현대미술 가의 독특한 시선으로 재해석한 작품을 전시한다.
이 전시는 ‘백제’를 재해석하고 그 역사성과 지역성을 새로운 가치로 드러내고자 하며, 현대미술과 실존했던 역사를 매치시켜 예술적 창의성 속에서 도민들로 하여금 진취적 자긍심을 갖도록 하고자 기획되었다. 도립미술관은 진중한 주제를 설정한 만큼 역사적인 사실과 맥락을 공유하기 위해 초대미술가들과 함께 두 차례에 걸친 현장답사(익산, 공주, 부여)와 특강을 가졌다.
전시기획의 프로세스(과정)를 중시하면서, 역사학자와 토론하고 공감하면서 협업했다. 인문학의 꽃인 예술은 문자 너머의 감성을 표현한다. 기록된 역사, 유적, 유물 등에서 발동한 미술가의 톡톡 뛰는 감각과 상상력이 볼 만하다.
저마다 자신의 작품세계가 확고한 초대작가들이 ‘백제를 재발견한다’는 주제를 풀어 가면서 기분 좋은 버거움을 느꼈다고 한다. 고대국가 백제는 찬란한 역사보다는 패망한 시기가 많이 회자되고 부각된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백제 문화의 자긍심과 미래의 꿈을 제시한 작품들이 희망을 주고 있다.
1차 답사 일시는 2015년 7월 16일(목) AM 10:50 ~ 17(금) AM 09:30 이었다. 장소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가운데, 전북 익산시의 왕궁리 유적(王宮里遺蹟)과 미륵사지(彌勒寺址)였다. 전북 익산은 익산쌍릉, 제석사지, 익산토성, 미륵산성, 금마도토성 등 백제역사유적지가 다수 남아있는 지역이다. 이중에서 왕궁리 유적(王宮里遺蹟) 및 미륵사지(彌勒寺址)를 탐방하고 이신효 및 이경복 학예연구사로부터 유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답사장소에 대한 정보는 다음과 같다.
○ 사적 제408호 왕궁리유적은 남북 492m, 동서 234m, 폭 3m 규모인 궁성이다. 이 안에서는 대형건물지?정원시설?후원시설?공방시설?환수구시설 등이 남아있다. 토기?기와?유리?금제품 및 도가니 등 4천여 점의 유물이 출토된 곳이기도 하다. 기와 중에는 ′수부(首府)′ 라고 인각된 명문와가 출토되어 백제 왕궁의 진정성마저 보여준다.
국보 제289호인 왕궁리오층석탑(王宮里五層石塔)은 왕궁리유적의 대관사 목탑터정 중앙 위층에 위치하고 있다. 단층기단위에 네 귀가 반전된 얇은 옥개석을 가진 오층석탑은 미륵사지 석탑의 전통을 보여준다. 1965년 탑의 해체보수 과정에서 유리제사리병과 금제사리내함, 19매의 금강경판 등 사리장엄구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사적 제150호 미륵사지는 익산의 금마면 용화산 기슭에 자리잡은 한국최대의 사찰지이다. 무왕과 선화공주의 전설을 품고 있고, 보물인 당간지주가 있으며 2009.1.14일 해체복원 작업중이던 석탑의 1층에서 ′사리장엄′이 발굴되기도 하였다.
1차 답사를 마친 이후, 익산유스호스텔에서 특강이 이어졌다. 특강 초빙강사는 (사)전북문화재연구원 최완규 이사장과 마한백제문화연구소 문이화 책임연구원이었다. 최완규 이사장은 <익산 문화유산의 정신성>, 문이화 책임연구원은 <사람으로 본 익산>에 대해서 각각 90분씩 강의하였다. (사진3~5)
부소산성과 관북리유적으로 이루어진 부소산성지구는, 부여지역에서 가장 핵심적인 지역중 하나다. 사비시대에 백제의 왕도 부여에 살았을 터인데, 그 유력한 후보지로 꼽혀온 곳이 바로 이 부소산성지구다, 다시 말해서, 부소산성지구는 백제의 왕궁과 왕궁 관련시설, 그리고 그 배후시설이 자리한 곳으로 알려진 곳이다.
석장리박물관은 구석기시대 유적지인 석장리에서 출토된 유물을 바탕으로 선사인의 생활상과 출토유물, 관련자료 등을 집대성해 2006년에 개관한 한국 최초의 구석기 선사박물관이다. 석장리 유적지는 1964년 연세대 손보기 박사팀에 의해 우리나라에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밝혀진 곳으로, 현재 이곳에는 박물관 전시실과 손보기 기념관, 선사체험관으로 건물이 나뉘어 있다. 유적 발굴지 옆으로는 아름다운 금강이 흐르고 있는데, 경관이 매우 아름다워 공주의 십경(十景)으로 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앞산의 풍광 또한 수려해서 흐르는 강물과 더불어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의 휴식을 느끼게 한다.
사적 12호 공산성은 백제시대의 왕성으로 금강에 접한 110m 높이의 공산에 능선과 계곡을 포함해 쌓은 포곡형 산성이다. 이 성은 백제 22대 왕인 문주왕이 475년에 한성(서울)에서 웅진(공주)으로 천도한 뒤, 성왕 때인 538년에 사비(부여)로 옮길 때 까지 5대 64년간 백제왕이 거주했을 것으로 알려진 성이다. 성은 원래 토성(土城)이었으나, 조선 선조·인조 대에 대부분 현재와 같은 석성(石城)으로 개축되었다.
송산리고분군(무령왕릉)은 웅진 백제시대 왕과 왕족들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는 곳으로 위치는 송산의 남쪽 경사면에 있다. 이곳에는 현재 무령왕릉을 비롯해 모두 7기의 고분이 남아있는데, 무령왕릉을 기준으로 위 북동쪽에 1~4호분이 자리하고 있고, 5호분과 6호분은 무령왕릉과 인접해 있다. 무덤의 형태는 1~5호분은 굴식 돌방무덤이고, 6호분과 무령왕릉은 터널형의 벽돌무덤이다. 무령왕릉은 백제 25대 무령왕과 왕비의 능으로, 이 무덤은 1971년 여름 장마철에 5호분과 6호분의 내부에 스며드는 물기를 막기 위한 배수로 공사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 이 왕릉에서 출토된 유물은 총 108종 4,600여 점인데, 유물 또한 매우 우수하여 국보로 지정된 것만도 12종 17점에 달한다.
홍익대학교 대학원 출신으로 2011년 성곡미술관 ‘내일의 작가상’을 수상한 김범석 미술가는 익산 왕궁리 5층 석탑에서 느낀 감정을 형상화한 <백제의 숨 1 – 왕궁리>를 선보인다. 우리 눈에 보이는 석탑과 소나무를 통해,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지금도 여전히 땅 밑에 머무르면서 그 숨결을 고르고 있을 수많은 백제 유물들을 작품으로 드러냈다. 만경강 줄기를 따라 백제시대에 왕래했던 배들이 지금도 들어 올 것만 같은 그 시절의 정취를 표현한 작품이다.
김윤식 미술가는 <고마나루 전설>을 출품한다. 이 작품은 공주 무령왕릉 서쪽으로 전개되는 낮은 구릉 상의 금강 변과 나루터 일대, 그리고 연미산 지역을 아우르는 사적인 고마나루를 기반으로 제작되었다. 백제의 웅진(熊津), 신라의 웅천주(熊川州)와 웅주(熊州)를 거쳐 고려시대의 지명이었던 공주(公州)라는 이름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는 백제의 도읍 ‘공주’를 조명하였다. 특히 이 작품은 총각과 처녀 곰에 얽힌 애잔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 고마나루를 배경으로 상상 속의 짐승들이 평화스럽게 노닐고 있는 모습들을 형상화하였다.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대학 박물관장직을 맡고 있는 김인경 교수는 백제의 유구했던 역사와 찬란했던 문화를, 강물처럼 흘러갔던 “역사 속의 인물들”과 “명멸하는 영속성”이라는 주제로 연결한 <Silent Voyage (고요한 여행)>이라는 작품을 제작하였다. 독특하고 밀도 있는 작품 구성력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캔버스 천 등의 혼합재료를 사용한 설치작품으로 10점의 조형물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끝없이 흘러가는 형상으로 제작되었다. 백제의 영속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우리지역을 대표하는 부안 출신의 박경식 미술가는, “고래의 꿈”이라는 제목의 작품을 선보인다. 자연에 대한 집요한 집착과 통찰을 나뭇가지를 이용하여 전시장의 화이트큐브에 담아내는 그는 이번에는 ‘고래’에 주목하였다. 1,400여년전 그 어느 시기보다도 찬란하고 우수한 문화를 꽃 피웠던 고대국가 백제. 해상교역의 중심지로서 해상왕국을 꿈꾸었던 백제를 거대한 고래에 비유한 것이다. 이제 그 꿈은 사라지고 흔적만 남은 이 땅에 언젠가 다시 백제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작가의 염원이 담긴 작품이다.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수학하고 다수의 국외 전시 경력을 갖고 있는 박방영 미술가는 장지에 혼합재료(먹, 아크릴, 펄, 금, 동분)를 사용하여 백제 무왕 서동과 무왕의 왕비 선화공주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서동과 선화공주 연애사건 1,2> 작품을 선보인다. 글자와 그림이 혼용되어 이야기의 내용을 보고 읽기 편하도록 상형문자로 그려진 그림이다. 상형문자는 원시사회에서 처음 만들어 소통되어진 그림이면서 문자이다. 이 작품에 표현된 문자들은 작가의 예술성과 창작력으로 새롭게 재해석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전북대학교 예술대학 박인현 교수는 120호 평면작품 5폭으로 우리 고유의 매체인 먹과 전통의 오방색을 방위별로 적용하여 중앙은 황색, 동쪽은 청색, 서쪽은 백색, 남쪽은 적색, 북쪽은 흑색 분위기로 채색한 <왕도 익산> 작품을 선보인다. 고대 국가의 ‘왕도’는 너른 평야와 원활한 수로교통 등의 지리적 여건을 바탕으로 궁성과 사찰, 왕릉, 성곽 등의 기반을 갖춤으로서 그 기능이 수행되었던 도시이다. 마한의 고도이자 백제 사비시대 제2 왕도였던 ‘익산’은 미륵산과 용화산을 중심으로 외부 침략의 방어목적인 성곽 조성은 물론, 금강과 만경강이 상하로 위치해 있어 수로교통의 용이성이 확보되었고, 남쪽으로 광활한 금만평야의 곡창지대가 위치하고 있어 고대 정치문화의 중심지로 성장할 수 있는 최적지로 여겨진다. 이와 같은 지형조건을 갖춘 익산에는 이곳 태생 무왕대인 7세기 전반 미륵산과 용화산을 중심으로 왕궁, 미륵사지가 건립되었고 동쪽으로 왕실 사찰로서 제석사, 그리고 무왕의 생가 터가 있는 서쪽에는 무왕과 왕비의 묘로 추정되는 쌍릉이 자리하고 있다. 이 점을 주된 착안점으로 하여 작품을 제작하였다. 즉 음양오행설을 기반으로 하여 각 방위별로 백제 무왕의 왕궁 터를 중앙에 두고 동쪽에 제석사, 서쪽에 쌍릉, 남쪽에 금만평야, 북쪽에 미륵사지를 설정하였다. (사진14)
2001 World Press Photo Award를 수상한 박하선 미술가는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의 무덤자리를 중국 낙양에서 촬영한 사진작품을 선보인다. ‘의자왕’은 태자를 비롯한 여러 신하들과 함께 당나라로 끌려가 장안에 도착하기 전에 낙양에서 고된 나날과 실의에 찬 나머지 죽게 되어 그곳에 묻혔다. 근세에 북망산 어느 농부의 밭이 갑자기 푹 꺼져 내려앉으면서 고분의 흔적이 보이자 중국 정부에 신고하게 된다. 고분을 발굴한 결과 옛 조선의 한 왕인 ‘의자왕’의 무덤임이 밝혀지면서 몇 가지만 수습되고 그대로 다시 묻어버려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 부근에서 태자 ‘융’의 묘비석도 발견되어 어디엔가 보관 중이며, 이 북망산 일대는 이러한 고분들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사진15)
전남대학교 예술대학 서기문 교수는 영욕의 역사를 그대로 안고 흘러내려온 금강을 배경으로 하여 그 위에 백제의 미소로 대표되는 서산 마애불을 조명해본 작품 <찬란한 여명>을 선보인다. 삼존불 중 본불은 사공으로 의인화하였고 우측의 미륵반가사유상은 여명의 금빛과 더불어 금동상으로 치환시키면서 작품의 중심에 두었다.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을 중심에 둔 이유는 우선 미래불인 미륵불의 상징을 빌려 영광스런 역사의 복원과 부활에 대한 염원을 담고자 함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국보 제83호 금동미륵반가사유상에 대한 학계의 재조명을 기대하는 것이다. 조화롭고 균형 잡힌 형태와 우아하고 세련된 조각 기술 등을 드러내면서 그러한 특성을 통해 백제성의 재발견에 다가가고자 하는 의도로 이 작품을 제작하였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도시 속의 사람들, 역사 속의 사람들을 그려내고 있는 서용선 미술가의 4.8m×7.5m의 대작 <무왕(武王)>이 출품된다. 이 작품은 새로이 발굴되는 역사의 유적과 구전되는 내용의 장면을 그려내었다. 배경화면은 오래된 사진을 바탕으로 그렸으며 전해져오는 내용을 상상해서 화폭에 담았다. 따라서 이 모든 장면들은 백제 유적을 답사하면서 현장에서 서사적 상황을 상상한 것에 의거한 작품이기도 하다. 서용선 미술가는 2009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 바 있다.
전남대학교에서 한국화를 전공하고 중국 노신미술학원 중국화부에서 석사를 졸업한 윤남웅 미술가는, 1400년전 이 땅에 찬연하게 이어져오던 600년 백제 왕조가 이웃나라의 칼에 베이고 창에 찔려 패망했던 역사를 조명한 설치작품 <백제찬가(百濟讚歌)>를 발표한다. 이 작품에는 한반도의 서남해를 기반으로 논밭을 일구고 그 소산으로 흥겹게 먹고 마시며 여유로운 에너지를 가지고 우아하고 세련된 문화를 가꾸어온 왕조 ‘백제’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작가는 승자의 역사에 상대적으로 생략되어 기술되었을 수도 있는 백제역사에 대한 단편적인 기록들과 백제의 후예로서 긍지를 갖는 삶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사유하게 한다.
전북대학교 예술대학 이상조 교수는 백제역사유적지를 직접 답사하고, 연구자들로부터 백제에 대한 집중 강의를 들으면서 현장에서 마주쳤던 유물에서 영감을 얻은 <이어지다 1,2,3> 시리즈 작품을 제작하였다. 작가는 백제유물의 이미지를 콜라주하고 나서 텍스트와 결합시킨 15개 정방형의 작은 작품들을 병치하여 전시한다. 그러한 병치 방식을 통해 진취적이고 월등했던 백제문화의 정신성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또한 현시점에서 백제의 문화를 복원하려는 노력을 작품으로 기록하고자 하였으며, 백제라는 지나간 과거의 시간과 지금 현재가 시공간을 초월하여 상호 소통함으로써 서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작가의 의도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미술교육과를 졸업한 이성원 미술가는 백제의 백성을 질긴 생명력을 지닌 식물(잡초)에 비유한 “민초(民草)” 설치작품을 전시한다. 이 작품은 미륵사지 석탑에서 영감을 얻었으며 익산, 공주, 부여, 서산에서 채취한 서로 다른 종류의 풀잎과 나뭇잎 99개를 A4 크기의 시멘트에 눌러 찍은 것이다. 미래의 행복한 삶을 갈망하며 소박한 일상을 견디어 냈을 백제 사람들을 생각한 작품이다. 99라는 숫자는 완결되지 못하고 아련히 남아 우리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는 백제인들의 소망과 정서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우리 지역의 서양화가이며 미술평론가인 이승우 미술가는 백제시대 세워진 유명한 사찰에서 독특하면서도 우아한 조형미로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대웅보전이나 법당 문의 다양한 “꽃창살” 무늬를 기반으로 제작한 유화작품을 선보인다. 작가는 백제시대 건립된 산사에서 마주친 정교하고 세련된 창살 무늬를 재해석하였다. 기하학적 형태와 추상적인 묘사가 혼재한 화면에는 백제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자연스럽게 녹여낸 작가의 감성이 짙게 묻어나 있다.
쌈지길과 쌈지농부의 아트디렉터로 ‘산돌 쌈지농부 이진경체’ 폰트를 제작한 이진경 미술가는 백제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공부하며 고조선과 신석기 시대, 빙하기, 생명의 기원, 일본과의 관계, 임진왜란, 달 항아리, 한자, 탑, 개방성, 동아시아 역사 등 다양한 정보에 대해 떠오르는 이미지나 생각을 작품화하여 임의적으로 나열하였다. 그래서 따로 독립된 하나하나의 캡션이 없으며 순차적인 배열과도 거리가 먼 구성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 안에서 백제, 마한, 고조선의 역사, 달 등의 관련성을 발견하고 관람자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을 확장해 가는 것에 의미를 둔 작품이다.
예원예술대학교 미술디자인학부 이철규 교수의 <합(合) - 금(金) 이야기>는 우리의 전통 재료인 비단 위에 금박을 입힌 불상 형태를 투영하기 위해 전통 공예 기법인 ‘개금기법’을 사용한 작품이다. 비단 양면에 금박 공예 작업을 하여 화면 상단에는 백제의 뛰어난 금제유물을 표현하였으며, 하단 및 좌우 측면에는 수묵으로 백제 유물이 발굴되었던 장소의 풍경을 나타냈다. 비단은 네 겹을 사용하여 양면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작업하였으며, 이를 통해 백제 문화와 유물이 갖고 있는 깊이감과 정신성을 드러내고자 했다. 특히 안쪽 두 개의 화면에는 수묵으로 자연적 의미를 담아내고자 하였으며, 바깥쪽 양면은 순금박으로 개금하여 인간의 손기술을 담아냄으로써 자연과 인간이 합일되는 백제 유물의 우수성과 독창성을 전달하고자 했다.
전북대학교 예술대학 이철량 교수는 백제시대의 유적들을 답사하고 거기에서 마주친 유물들의 기억과 이미지들을 합성하거나 풍부한 상상을 기초로 제작된 <백제는 꿈이다> 등 다섯 작품을 전시한다. 백제의 다양한 디자인과 형태들을 조합하고 그를 통해 새로운 작가만의 이미지를 재구성하였다. 특히 각종 불교 조각이나 공예기법에서 얻은 다양한 조형에서 받은 영감을 수묵담채기법으로 형상화한 작품을 선보인다. 우아하고 정교한 미를 간직한 백제의 문화와 역사가 오늘날까지도 우리 자신들이 지닌 정신과 혼속에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원광대학교에서 한국화를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까지 마친 이희춘 미술가는 오천년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 융성했던 것으로 보여 지는 백제의 문화와 예술을 상징하는 작품 <화양연화> 시리즈 작품을 선보인다. 왕궁리 유적에서 발굴된 대형 철제 솥을 형상화하고 그 위에 화려하고 다양한 꽃과 새들을 표현하였다. 작품 중앙에 투박한 철제 솥을 둠으로써 백제의 소박하고 절제된 미의식을 투영하고, 화사한 꽃들로 찬연한 백제 문화를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또한 백제의 왕비가 머리에 썼던 왕관을 꾸밀 때 쓰였던 꾸미개를 작품화하였다. 백제의 세공술은 그 문화의 융성함을 유추하게 하며 인동당초 무늬와 불꽃 무늬를 혼합한 관 꾸미개의 형상 및 여러 꽃들의 모양을 통해 불꽃처럼 찬연했던 백제의 문화를 의인화 하였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과 독일 국립 함부르크미술대학을 졸업한 임동식 미술가는 올해로 61회째 행사를 이어온 <제61회 백제문화제>를 조명하였다. 이 축제는 1955년 백제인의 숨결을 살려 새로운 역사문화 도약의 계기로 삼자는 취지로 백제의 패망 당시 3충신을 추모하는 삼충제와 그들의 영혼을 위로하려는 의도로 출발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지역을 홍보하거나 대중의 흥미와 시선을 끌기 위한 볼거리 위주로 바뀌었다는 지적도 있는데, 이런 맥락에서 이 작품은 과연 그렇게 변해가는 축제의 성격이 적절한 것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이러한 점을 반영하여 백제황토, 석회, 삼베, 색 전기줄 등의 재료를 이용하여 1955년, 1965년, 2015년 등 행사의 성격을 시간적 차별성을 두고 3작품으로 표현해 보았다.
○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립조형미술학교를 졸업한 정운학 미술가는 물이 담겨진 투명한 원구 안에 있는 필름의 영상이 전시실 바닥에 투영되는 구조로 제작한 “시간을 담다”라는 설치작품을 선보인다. 필름의 영상은 백제와 관련된 것으로 필름이 팬에 의해 움직이게 되는 작품이다. 바닥면에 비치는 원형 영상이 주요 작품이 되며 영상 주위에는 샘터(옛 우물) 형태로 돌이 놓인다. 과거의 시간을 상징하는 샘물터는 땅 아래 묻힌 역사를 현재와 연결해 주는 통로가 된다. 정운학 미술가는 이 작품을 통해 과거와 연결되는 현재의 시간을 담고자 했다. (사진27)
원광대학교 서예과를 졸업하고 베이징 중앙미술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최재석 미술가는 평소 ‘우연욕서(偶然欲書)’를 작업과정의 중요한 조건으로 삼는다. ‘문득 쓰고 싶다(우연욕서)’는 곧 의욕이며 필흥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유득공 선생(1748~1807)의 회고시 “백제”를 ‘우연욕서’하여 완성한 작품이다. 이러한 작품은 미리 구상하고 머릿속에 스케치해본 다음에 하필(下筆)한 작품보다 덜 계산적이고 덜 다듬어져서 오히려 그 자연스러움을 취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우연히 얻은 색다른 형태를 표현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 작품은 그러한 의도를 반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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