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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청년 2015 展 |
HOME 〉 전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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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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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
0000-00-00 ~ 0000-00-00 |
시간 |
2015. 6. 5(금) ~ 2015. 7. 12(일) |
장소 |
전북도립미술관 |
장르 |
기획전 |
가격 |
관람료 : 무료 |
주최 / 주관 |
전북도립미술관 / 전북도립미술관 |
문의 |
063-290-6871 |
예매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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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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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소개
전북도립미술관(관장 장석원)에서는 <전북청년 2015> 展을 개최한다. 초대작가는 김병철(설치), 김성민(회화), 이주리(회화), 탁소연(한국화)이다.개막식은 6월 5일(금) 오후 4시. 기존 대강당에서의 식전 행사를 지양하고 2층 전시실 앞 로비에서 간략하게 파티형식으로 리셉션 행사를 갖는다.
<전북청년 2015> 展은 지난해 10월 공모를 추진할 때에 약속했던 전시 지원의 결정판이다. 78명의 지원자 중에서 4명의 작가를 선정해서 이들을 여러모로 지원해 왔다. 작품구매를 통한 지원과 선정결과를 알리는 전주와 서울에서의 전시 그리고 각자의 기량을 최대한 키울 수 있는 본관 전시의 약속, 작품제작비 지원 등이 이뤄졌다.
보고전시회를 통해서 “전북청년 2015” 작가로 선발한 4명의 작가를 전북도민과 서울지역에 알렸다. 작년 12월 18일부터 45일간 도립미술관 상설전시실에서 보고전시를 했으며, 이를 더욱더 보강한 전시를 올해 2월 18일부터 일주일간 전북도립미술관 서울관에서 기획전으로 개최했다.
<전북청년 2015> 展에서는 4명의 작가에게 도립미술관 본관 전시실 전체를 제공했다. 도립미술관은 그동안 재료비를 지원했으며, 작품선택, 전시장 디스플레이, 작품설치에 이르기까지 작가들이 스스로 결정하여 결과를 만들도록 돕고 있다. 이는 최대한 작가들의 의사를 반영하고 객관적으로 작가들을 재평가하려는 의도이다.
<전북청년 2015> 展의 결과에 대하여 미술관은 엄정하게 재평가할 것이며, 이들 중에서 아시아현대미술전과 타이페이 관두미술관의 레지던시 작가가 선정될 예정이다. 내년 초에는 3개월 동안 1~2명의 작가를 타이페이 아티스트빌리지에 레지던시 작가로 머물게 할 예정인데, 청년작가들도 그 대상으로서 주목하고 있다.
한편 도립미술관은 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청년작가초대전 “빛2015” 초대작가로 이주리 작가를 프리젠테이션하여 2015 하정웅청년미술상 수상작가로 선정된바 있다. 도립미술관은 앞으로도 매년 청년작가를 선발할 것이고, 여러모로 지원을 도모할 계획이다.전북도립미술관은 “전북청년 2015” 작가의 작품제작 과정을 영상으로 담았다. 두 차례에 걸친 촬영(′15.4.20 / 5.18)을 이문수 학예연구팀장과 정우석 학예연구사가 작업실에 방문해서 촬영한 것. 청년작가의 담백하고 진솔한 이야기와 독특한 분위기의 영상을 제1전시실에서 상영한다.
제2전시실에는 이주리 작가의 작품(사진1~3) 16점을 만날 수 있다.남자누드가 뒤엉킨 가로 9m 크기의 대작과 획일화된 소통 때문에 소외당한 인간이 대중 속에 휩쓸려 자신의 얼굴을 잃어가는 상황을 “살다”라는 주제로 표현한 작품들이다.소통이 단절되고 물질이 정신을 지배하는 현대사회에 있어서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의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기르고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인지할 수있기를 작가는 바라고 있다.
<살다>라는 작품의 제목은 작가의 일관된 작품주제이기도 하다. 마치 어머니의 태반을 연상하게 하는 남자누드의 작품이미지가 매우 강렬하게 다가온다. 작가는 남자누드의 모습이 아니라 사람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한다. 인류 태초의 모습 그대로를 표현해 보고 싶어서 머리카락이나, 옷, 성기를 드러내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남자누드의 뒷 모습을 일관되게 표현하여 표정이나 특정적인 이미지를 탈피한 진심어린 인류 본연의 모습에 충실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감추는 것을 그만두고 다 드러내 보임으로서 동양의 관계론을 연상시키는 작가의 작품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자화상을 재인식하고 진정한 나 자신의 모습을 성찰해보고자 하는 작가의 진지한 자세가 엿 보이는 작품이다.
제3전시실에는 탁소연 작가의 작품(사진4~6) 12점을 만날 수 있다.현대인의 익명성을 ‘무명씨(無名氏)’라는 주제를 설정해서 수묵으로 표현하고 있다. 타자도 결국 본인 자신일 수도 나의 가족일 수도 나의 친구들일 수도 있음을 상기시켜주는 작품들이다. 작가의 관심사는 현대인들의 삶 속에 잔재해 있는 기억 혹은 흔적에서 느껴지는 느낌이다. ‘먹’이라는 재료를 가지고 현대인들의 이미지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도심을 중심으로 커다란 군상을 형성하기도 하지만, 제각각 흩어져버리기를 반복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대인들의 일련의 삶의 흔적들을 작가자신에게서 관심이 있는 이미지들로 형상화 하여 한지위에 먹으로 작품을 제작한다. 우연적이면서도 즉흥적인 표현이 가능한 물성을 지닌 한지와 먹으로 현대인들에 대한 잔상이나 모호한 느낌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우리들 삶처럼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재료가 먹이다. 한지와 먹의 물성과 현대인들의 삶은 예측불허하다는 점이 닮은꼴이다. 이렇듯 작가는 한지와 먹을 활용하여 모호한 느낌을 자아내면서도 화면에 여백을 살려 둠으로서 사유의 공간(여지)을 관람자와 함께 공유하고 있다.
작가의 최근작 모티브는 이름 모를 낯선 타인의 모습이다. 지인이나 모델이 아닌 전혀 알지 못하는 인물을 대상으로 작품을 제작한 이름없는 <무명씨> 연작이 그것이다. 작가 본인이 주체일 경우 <무명씨> 는 타인이 되지만, <무명씨>가 주체로 바뀌게 되면 작가 자신은 결국 타인의 존재일 수밖에 없다. 희미한 그림자와 같거나, 혹은 흔적처럼 보이는 <무명씨>는 결국 우리 자신의 자화상 일수도 있는 것이다. 탁소연 작가의 <무명씨> 시리즈는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나 자신을 발견하고 찾아볼 수 있는 묘한 매력을 지녔다.
제4전시실에는 김병철 작가의 작품(사진7~9) 31점을 만날 수 있다.‘일말의 관심’이라는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그리고·자르고·재조립하고, 고유의 색을 없애고 흰색으로 박제화한 실제 크기의 오브제는 중립적인 입장에서 관람객의 사유를 적극적으로 개입시키고 있는 작품들이다. 김병철 작가는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작품제작으로 현대미술가의 길을 걷고 있지만, 이전에는 세라믹 작업에 몰두했었다. 점토매체를 다루다가 석사논문 <이우환>론을 계기로 메타포(은유)적인 비움과 덧붙이기 작품을 선보이기 시작한다. 사각 테이블이 지닌 물리적 요소에 착목한 작업에서는 테이블의 네 다리를 불완전한 이미지로 시각화한 후, 그 비워둔 자리에 ‘나’라는 주체적 입장을 끌어들인다.
테이블이라는 보편 적 사물이 작가의 재해석에 의해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기에 이른다. 특별하지도 않은 일상의 사물(테이블)을 대상으로 우리들에게 말을 건다. 일상 속 사물을 재해석하고 그 의미를 문화 안에서 <상호 소통>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가 엿보인다. 그의 작업장에는 작품이외에도 아 이디어 스케치북으로 가득하다. 한 작품을 구상하는 데에만 수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일상의 사물을 바라보는 진지한 자세가 그 스케치북에 빼곡하게 담겨져 있는데, 그의 예술가적 자질과 미래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제5전시실에는 김성민 작가의 작품(사진10~12) 36점을 만날 수 있다.거친 붓질로 인간의 나약함과 절망감, 현실의 고단함을 이겨내고 앞으로의 희망을 향해 나가려는 상황을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슬기롭게 역경을 딛고 일어서고자 하는 작가의 희망이 숨겨져 있는 작품들이다. 김성민 작가는 절박한 처지에 내몰린 현대인들의 현실 그대로의 모습을 캔버스 안에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도살장에 걸린 가축들의 살과 뼈,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는 벌거벗은 남자 누드 등 유독 동물성의 존재들을 부각시킨 절박한 현실 그대로의 모습이다.
소파에 누드로 앉아 있는 사내는 배를 축 늘어뜨린 채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고 왠지 무기력하고 피곤해 보인다. 도축장에 매달린 가축들의 살과 뼈, 힘없는 사내의 몸 모두는 국가나 사회 시스템이 만든 제도적 산물들이다. 사회시스템이 만든 무한경쟁의 삶속에서 낙오자가 된 동시대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들이 도축장의 가축들과 힘없는 사내의 몸으로 옮겨간 것이다.
이렇듯 작가는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시대의 암울한 초상을 은유적으로 문제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세속적이거나 관능적인 인체의 누드가 아니라 남자의 벌거벗은 몸을 통해 현재의 삶이 처한 막연함, 불안함, 초초함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자세가 엿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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