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필
지휘 / 금노상
유연하고 정교한 바톤 테크닉으로 근 ? 현대의 난곡들을 마력처럼 풀어내는 마에스트로!
지휘자 금노상은 아바도(Claudio Abbado), 메타(Zubin Mehta) 등 명 지휘자들을 배출시킨 비엔나 국립대학교(Universitat fur Musik und darstellende Kunst Wien)에서 1980년부터 1985년까지 오페라좌 음악감독 오트마 쉬트너(Otmar Suitner)를 사사하여 지휘 디플롬을 받았다. 동시에 Korrepetition Praxis를 지휘과와 복수전공하며 지휘자로서의 기반을 닦았다. 로마 심포니 오케스트라, 마케도니아 오케스트라 등 유럽 교향악단과 서울시립교향악단을 비롯하여 부산, 대구 등 전국의 시립교향악단은 물론 KBS교향악단, 코리안심포니 등을 지휘하였다. 또한 한국 지휘자로는 처음으로 마케도니아 국립오페라단, 중국 상하이교향악단, 일본 삿포로교향악단을 지휘했으며, 타이완성립교향악단과 인천시립교향악단합동공연으로 타이완 전역에서 연주하기도 했다. 오페라 지휘자로도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바, 매년 국립오페라단, 한국오페라단, 대전문화예술의전당 제작오페라, 광주오페라단 등과 함께 오페라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1989년부터 광주시립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로 만 5년이 넘는 재임 기간을 통하여 광주시향을 국내 정상급 교향악단으로 도약 발전시킨 평가를 받았으며, 1994년부터 10년 동안 인천시립교향악단의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활동하면서 인천시향을 4관 편성의 관현악단으로 확대하여 R.스트라우스, 구스타프 말러,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등 대편성의 새로운 작품들을 소개했고, 브루크너 교향곡 등을 한국 초연하였으며, 2006년부터 광주시립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를 다시 맡아 광주시립교향악단을 재도약시키는 등 한국 교향악단 발전을 위해 정진해온 대표적인 지휘자이다. 2011년부터 대전시립교향악단 제7대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취임하면서 관객들로 부터 절대적인 호응을 이끌어내며 마스터즈 시리즈 시즌 전회 매진의 기록을 세우고 있고, 한국 오케스트라 최초로 음악의 도시 비엔나 무지크페어라인 골드홀을 비롯한 체코 프라하 스메타나홀, 헝가리 부다페스트, 독일 뮌헨 헤라클레스홀로 이어지는 유럽투어에서 유럽인들의 뜨거운 기립박수를 이끌어 냈으며, 유럽 문화예술의 중심지인 이들 도시들의 최고의 연주홀에서 한국 교향악단의 수준을 높이 평가받는 계기를 마련했다.
피 아 노 _ Ivan Donchev
1981년 불가리아에서 태어난 천재 피아니스트 Ivan Donchev는 Aldo Ciccolini의 제자로써 그로부터 음악적이고 재능과 기교를 부여받은 탁월한 피아니스트이다. 그는 5세부터 그의 음악 연구를 시작했고, 바로 1년 후에 대중 리사이틀을 가졌으며,9세에 처음으로 국제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였다. 1993년 그는 그의 Burgas 필라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이든의 피아노 콘체르토 in D로 콘체르토에 정식 데뷔를 하였으며,1997년 그는 Burgas 시로부터 최고의 명예상인 올해의 아티스트상을 수상하였다. Ivan Donchev는 Burgas Philharmonic, Kronstadt Philarmoniker, Oradea Symphony Orchestra, “Mozart Sinfonietta” Chamber Orchestra, Bari Symphony Orchestra, Razgrad Philharmonic과 함께 Haydn, Beethoven, Chopin, Mendelssohn, Grieg, Rachmaninov, Brahms의 곡들로 협연하였고 Tchaikovsky의 오케스트라와 그의 피아노 전곡을 연주하였다. 그의 연주는 불가리아 국영 TV, 프랑스 라디오, 이탈리아 케이블 라디오 클래식 음악 채널에서 방송 된다. 그의 레파토리는 Bach와 Scarlatti부터 현대 작곡가의 이르기까지 여러 피아노 작품들을 훌륭하게 연주되어졌다. 2006년 그는 Vito Palumbo's Quadro Sinfonico Concertante의 세계적 수준의 음반을 제작 하였으며,그가 매우 왕성하게 활동 중인 실내악은 Santa Cecilia (in Rome)에서 졸업(Diploma)하였다. 그의 음반들은 Rai Trade가 제작하였고 Suonare 뉴스 음악 잡지에서 연재되었고, 그는 Rome의 음악학교 Cherubini에서 피아노교수로 재직 중이고 국제 음악경연대회의 심사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2008년 Ivan Donchev는 Aldo Ciccolini로 부터 직접 Sorrento Classica상을 수상하였으며, 2011년 음반사인 Sheva Collection이 주관하여 리스트 한정판 CD를 제작했다.
프로그램
L. v. Beethoven / Overture to “Egmont”
베토벤 / 에그몬트 서곡
L. v. Beethoven / Piano Concerto No. 5 in E♭ Major, “Emperor” Op. 73
베토벤 / 피아노 협주곡 5번 내림 마장조 “황제” 작품. 73
I . Allegro
II. Adagio un poco mosso
III. Allegro
L. v. Beethoven / Symphony No. 5 in c minor, “Schicksal” Op. 67
베토벤 / 교향곡 5번 다단조, “운명” 작품. 67
Ⅰ. Allegro con brio
Ⅱ. Andante con moto
Ⅲ. Allegro
Ⅳ. Allegro
프로그램노트
L. v. Beethoven / Overture to “Egmont”
베토벤 / 에그몬트 서곡
16세기 중엽 에그몬트는 스페인의 예속에서 벗어나려는 네덜란드의 독립운동 지도자이다. '에그몬트'는 역사상 실재했던 인물과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청력 상실로 인하여 세상과 격리되어 지내던 베토벤은 음악 외에 독서가로서. 철학자로서 문학이나 철학에 심취하여 호머의 《오딧세이》, 《일리아드》를 비롯하여 인도 철학에도 몰두했는가 하면 프리드리히 폰 쉴러, 괴테, 윌리엄 셰익스피어 등의 대문호의 문학에도 심취하였다. 특히 이들 대문호의 작품들은 베토벤의 음악 작품 곳곳에 상당한 영감을 제공했다. 베토벤은 어린 시절부터 괴테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다."그의 언어는 마치 영혼을 거쳐 나오는 것처럼 고상한 체계로 구성된 조화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고 극찬했다. 이 곡은 괴테가 12년의 세월에 걸쳐 완성한 5막의 비극 '에그몬트'를 읽고 감격한 베토벤이 1809년에 작곡을 시작해서 1810년에 완성한 곡이다. 1810년 5월 24일 괴테의 에그몬트가 빈의 부르크 극장에서 상연되었을 때, 베토벤은 서곡과 클레르헨의 노래와 막간음악 등을 작곡해 극을 음악 화했다."에그몬트" 서곡은 "에그몬트"에 붙인 부수 음악이다. 이 부수 음악은 서곡을 포함해서 전 10곡으로 되어 있다. 소나타 형식으로 되어있고, 폭군의 압제하의 영웅 에그몬트 백작의 기백을 상징하는 듯 장대하며, 물결치는 심장의 고동과 공포의 예감이 제대로 그려져 있다. 이 서곡은 두 개의 주제와 환상으로 이루어지고, 이것이 여러 가지로 변화하여 애국의 열화로 불타는 것처럼 연주된다. (연주시간 : 약 9분)
L. v. Beethoven / Piano Concerto No. 5 in E♭ Major, “Emperor” Op. 73
베토벤 / 피아노 협주곡 5번 내림 마장조 “황제” 작품. 73
베토벤이 <피아노 협주곡 제5번>을 작곡한 것은 1809년의 일이다. 이 시기에 나폴레옹의 침입으로 빈에 거주하던 귀족들은 피난을 떠났고, 그로 인해 베토벤은 재정적인 후원을 받지 못한 채 정신적으로도 안정되지 못한 상태에 처해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시기부터 테레제 말파티라는 대지주의 딸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비록 결혼에까지 이르지는 못했지만, 이러한 사랑의 감정이 <피아노 협주곡 제5번>을 비롯한 그 시기의 작품에 밝은 악상으로 반영되고 있다. 이 작품의 초연은 1811년 11월 28일 라이프치히의 게반트하우스에서 요한 프리드리히 슈나이더의 피아노 연주로 이루어졌고, 바로 다음해에는 체르니에 의해 재 연주 되었다. <피아노 협주곡 제5번>에는 '황제'라는 부제가 붙어있는데, 이부제는 베토벤 자신이 붙인 것은 아니다. 이 곡이 특정한 황제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곡 자체가 갖고 있는 당당하면서도 웅대한 특성 때문에 황제라는 명칭이 붙여지게 된 것이다. 이 작품에서 특이한 점은 제1악장의 첫 부분에 연주가의 기교를 드러내는 카덴차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카덴차의 위치는 제1악장의 끝부분인데, 베토벤은 카덴차를 첫 부분에 둠으로써 작품에 화려함을 더하고 있다. 따라서 베토벤은 1악장 끝부분에서는 카덴차를 사용하지 않고, 바로 코다로 이어서 연주할 것을 분명하게 지시하고 있다. 화려하고 당당한 카덴차에 이어 바이올린이 장대한 제1주제를 연주하며, 이어서 역시 바이올린이 스타카토를 특징으로 한 제2주제를 제시한다. 그 뒤로 피아노 독주의 제시부가 이어지고, 관현악에 의해 발전부가 시작된다. 이후 재현부를 거쳐 힘차게 곡을 마친다. 제2악장은 자유로운 변주 형식을 가진 명상적인 악장으로 끊어짐 없이 바로 제3악장으로 넘어간다. 제3악장은 론도로서, 황제의 위상을 보여주듯 웅장하고 장대한 모습을 갖춘 악장이다. 론도의 주요 주제는 이미 제2악장 마지막 부분에서 피아노에 의해 제시되는데, 이것을 피아노가 완전한 형태로 연주하는 것으로 제3악장이 시작된다. 이후 관현악과 피아노가 교대로 주요한 주제들을 제시한 후 코다를 거쳐 웅대하게 끝을 맺는다.(연주시간 : 약 40분)
L. v. Beethoven / Symphony No. 5 in c minor, “Schicksal” Op. 67
베토벤 / 교향곡 5번 다단조, “운명” 작품. 67
베토벤 교향곡 5번, 흔히 '운명교향곡'이라고 불리는 곡이다. '운명'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베토벤이 한 말에서 나왔다. 어느 날 베토벤의 제자가 1악장 서두의 주제는 무슨 뜻이냐고 물었을 때 베토벤이 "운명은 이와 같이 문을 두들긴다"라고 했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운명'교향곡이라는 별칭은 다른 나라에서는 쓰이지 않고, 일본과 우리나라에서만 그렇게 부른다. 베토벤 운명은 3번 '영웅'을 완성한 후인 1804년부터 작곡을 시작했다. 그러나 다른 곡들 때문에 작업이 미루어지다가 1807~1808년경에 집중적으로 작곡되어 완성되었다. 그때 베토벤은 6번 전원도 작곡을 병행하였다. 그래서 5번의 초연이 1808년 12월 22일에 있었는데, 같은 날 6번도 초연이 이루어졌다. 초연이 이루어지는 연주회 때 6번이 먼저 연주되어, 세상에 공개된 것은 5번이 6번보다 조금 늦었다는 것도 흥미롭다. 이 곡을 작곡할 당시의 베토벤은 큰 시련을 겪고 있었다. 30대 중반의 베토벤의 귀는 점점 나빠지고 있었고, 나폴레옹이 빈을 점령하는 등 그가 사는 세상도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그러니 이 교향곡을 운명을 극복하는 인간의 의지와 환희를 그렸다고 해석하는 것도 그럴 듯하다. 곡을 들으면 1악장에서 시련과 고뇌가, 2악장에서 다시 찾은 평온함이, 3악장에서 쉼 없는 열정이, 4악장에서 도달한 자의 환희가 느껴진다. (연주시간 : 약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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